| 내인생에 정년은 없다/이서지 화백·김시온 인형작가 부부
  경기일보   | 등록일 : 2013-04-16 [14:55]   | 조회 : 462   | 추천 : 145  
| 원본출처 :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227448
재즈처럼 신이 나는대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소재로 새로운 풍속화를 그리고 있는
이서지 화백(74). 고희(古稀)를 훌쩍 넘겼지만, 또래 어르신들의 성함 뒤에 으레 붙여지는
‘옹’이나 ‘선생’이란 호칭 대신, ‘화백’이란 호칭으로 불린다. 그에겐 정년이란 낱말 자체가
생소하다.
본명이 이준직인 그의 그림은 보는 사람들을 흐뭇하게 미소짓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림
구석구석에 녹아 있는 순하고 푸근한 옛 사람들의 표정이 그렇고, 눈과 마음으로 익숙한
소재들이 그러하다. 신나게 그림을 그린다는 그의 ‘흥’이 그림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인
모양이다. 그림에 푹 빠진 그의 이야기에도 그림을 향한 그의 순박한 사랑이 묻어났다.

◇옛날 이야기
지난 1934년 5월28일, 충북 청원군에서 태어난 한 시골학생은 특히 그림을 잘 그려 교실
뒤에는 종종 그의 그림이 벽에 붙어있고는 했다. 특별히 그의 조상 중 그림과 관련된 이는
없었지만, 그의 선친이 예술적 감각은 남달랐다. 시골에서도 수석과 나무 등으로 정원을
가꾸던 그의 선친은 그가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자 시골에서 청주읍으로 이사했다.
대학(청주대 경제학과)을 졸업했지만, 그림을 놓지 못한 그는 결국 은행에 취직하지 않고
상경, 화가의 길을 찾아 한 어린이 잡지사에 들어갔다. 잡지사를 거쳐 서울일일신문에서
시사만화를 그리다 지난 1961년 한국일보에 입사, 지난 1988년까지 근무하면서 어렵사리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나이 서른여덟에 첫 전시회 ‘이서지의 한국풍속화전’을 시작으로
70년대 거의 매년 국내·외 전시회를 열면서 그의 ‘푸근한’ 그림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꿈을 이룬 이후 소유하고 있던 과천의 한 부지에 지난 2004년 8월 선바위미술관을 세우고
그동안 생각해오던 전시와 문화교실들을 마음껏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사랑스런 아내, 김시온
모친이 마실을 나갔다 친구의 딸을 만나러 온 친구 김시온씨(69·여·본명 김옥분)를 보고
마음에 들어 선자리를 주선했다. 3년간의 열애 후 서른한살에 결혼하게된 이서지 화백은
“결혼반지인 작은 금반지 한개를 지금까지 한번도 뺀 적이 없다”고 자랑했다. 평생 그림을
그려 고운 그의 손에서 한자리를 차지한 낡은 금반지가 일흔이 지난 나이지만 그의 아내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것을 느끼게 했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아내의 이름을 묻자, 아내가 ‘옥분’이란 이름을 부끄러워할까봐
그가 즉석에서 지어준 이름이 ‘시온’이다. 당시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의 머리를 빠르게
스쳐지나갔던 그 이름은 지금까지 아내가 인형작가로 활동하는 예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결혼 후 이서지의 풍속화를 흉내내 인형을 만드는 인형작가들과 자주 만나던 아내가 만든
인형을 보고 그는 “재간이 보통이 아니다”라며 아내의 특기를 잘 살려줬다. 선바위 미술관
한켠에도 아내의 인형들이 잘 전시돼 있다.

◇스스로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며…
“평생을 풍속화 화가로 살아왔으니 이제 사람들이 원하는 풍속화를 그려내는 게 아니라
스스로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것 입니다.”
서른여덟살에 첫 전시회를 열고 지금까지 사람들이 원하는 고전적인 풍속화를 그려온 그는
이제 손이 가는대로, 신이 나는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 마음가는대로 그린다고는 하지만
시원시원하게 그려진 그림 속 인물들은 기존의 풍속화보다 더욱 정감이 가는 따뜻한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림 속 빗살들은 단순화 시킨 인물에게 생동감과 역동감을 불러 일으키고
그만의 특별한 구성으로 반복되는 연속화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의 그림에서 주목할 부분은 캔버스 한 구석을 차지한 단청 문양. “4세기 고분벽화때부터
단청은 단절되지 않고 꾸준히 발전돼 전통 건축에서 미의 완성을 위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습니다.” 단청에 대한 그의 애정과 관심이다.

그의 새로운 그림들을 만나 볼 수 있는 ‘이서지-새로운 그림세계전’이 다음달 30일까지 과천
선바위미술관에서 열린다. 모두 25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를 통해 선조들의 생활상을
해학적으로 그려온 이미지에서 벗어나 다소 추상적이고 감각적인 색체와 필법으로 묘사했다.

소중한 전통문화인 농악과 풍경소리, 공동체의식, 무속신앙, 부모님, 옛마을 등을 소재로
삼아 반추상에 가까운 형태와 기하학적 구도를 차용해 사각의 틀 안에 오밀조밀하게 담아냈다.
상하 원근을 무시한 2~3차원을 넘나드는 관점을 사용해 작품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풍경소리’와 ‘십장생’ 등은 해학적이고 익살적으로 표현된 동·식물과 정적인 절의 풍경소리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색채 또한 황토색과 흑색 등 극명하게 대비돼 민화적인 분위기가
엿보인다. ‘까치마을’은 희화화된 까치와 마을의 분위기가 친근하게 다가오고 ‘좋은 날’,
‘농악’, ‘흥겨운 소리’ 등은 아름다운 우리 서정문화와 가락소리를 느끼게 하는 인물상과
색채감각 등이 느껴진다. 작품들이 보여주는 색채는 적·흑·백·황·적색인 오방색으로 이뤄져
있고,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포근한 느낌과 필선의 강조는 후덕하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갖게 해준다.
이 화백은 “그동안 풍속화를 그려왔고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 또한 전통적인 한국미를
추구하는 연속선상의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의 소재, 전통미는 항상 변함이 없고
그 기법과 표현양식만 달라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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